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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라이프스타일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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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제로 라이프스타일로는 기후위기를 극복할 수 없다

[초록發光] 녹색 자본주의적 해법이라는 환상

'We are Gen S(우리는 S세대입니다).'

요즘 방콕 지하철역에서 자주 보이는 영상광고의 카피다. 이 광고는 초등학생 아이가 "S세대는 누구지? S세대가 뭐지?" 라는 질문을 던지고 그에 대한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보여준다. 아이는 챗GPT에 물어보고 친구한테 전화해서, 또 라이브 방송을 켜서도 물어보지만 S세대의 정체를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결국 아이는 밖으로 나가 노점 카페에서 우유를 한잔 사는데, 손에 받아 든 친환경 테이크아웃 잔을 보면서 '혹시 이게 S세대인가?'를 생각한다. 야시장에서 구제 옷을 고르면서 신난 사람들을 보며, 그리고 가족여행을 떠나려는 도중 'TV 플러그 뽑는 것 잊지 말라'는 엄마를 보며 아이는 '이게 S세대인가?'를 생각한다.

이어 마치 뉴턴이 나무에서 떨어진 사과를 보고 중력과 만유인력의 법칙을 발견했던 때처럼, 골똘히 생각에 잠긴 아이의 손에 식탁 위에 있던 빨간 사과가 떨어진다. 그 순간 아이는 깨닫게 된다. 밥 남기지 말고 다 먹으라는 엄마의 말도, 친환경 테이크아웃 잔도, 구제 옷을 쇼핑하는 것도, 플러그를 뽑아 전기를 아끼는 것도 모두 S세대가 따라야 할 행동 지침임을 말이다. 여기서 S는 Sustainability, 즉 지속가능성의 약자였던 것이다.

회의장에서 아이는 S세대는 단지 특정 세대를 일컫는 말이 아니라 지속가능성을 만들어 내는 라이프스타일 그 자체라고 말한다. 지속가능한 세상은 모두로부터 시작될 수 있는 만큼 우리는 넷제로 라이프스타일을 가져야 한다고 말한다. 이어 광고는 "S세대는 지속가능한 마음을 가진 새로운 세대"라는 문구가 나오며 마무리 되고, 기업의 로고와 모토가 등장한다. GC Chemistry for Better Living. 이 광고는 바로 태국석유공사 PTT의 석유화학부문 자회사인 PTT GC의 기업광고였다.

▲태국 석유화학기업 GC의 "We Are Gen S(우리는 S세대입니다)." 광고의 장면들. (출처: https://gcgens.com/en/business-gen-s/)

이 광고를 통해 생각해 볼 문제는 크게 두 가지이다. 지속가능성 S세대의 넷제로 라이프스타일로 현재의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극복할 수 있을까? 이 광고의 숨은 의도와 목적은 무엇일까?

개인적 차원의 라이프스타일 변화로 기후위기를 극복하자는 이야기는 새로운 것이 아니다. 인터넷 검색을 해봐도 '개인이 기후위기와 싸울 수 있는 방법', '기후변화를 막을 수 있는 일상 속 습관', '기온 상승을 1.5도로 줄이는 라이프스타일' 등 굉장히 많은 팁들이 존재한다. 태국의 경우 환경문제와 기후변화에 대한 인식 수준이 그리 높지 않기 때문에 친환경 라이프스타일과 지속가능성의 가치를 알린다는 측면에서 이 광고를 긍정적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종이와 페트, 유리병, 캔 등의 분리수거함이 학교나 공원, 아파트 등 많은 곳에 설치되고 있지만, 여전히 음식물쓰레기는 일반쓰레기와 함께 버려지고 있고 개인 용기나 텀블러, 면 주머니보다는 일회용 용기와 비닐봉지 사용이 일상화되어 있다. 따라서 이러한 광고를 통해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에는 구체적으로 어떠한 것이 있는지 알리는 것 자체는 부정적으로만 볼 일이 아닐 것이다.

그러나 이미 개인적 실천의 한계는 많이 지적되어 왔다. 개개인의 생활방식 변화만으로는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바로잡을 수 없다. 왜냐하면 자원추출, 생산, 유통, 소비, 폐기로 이어지는 선형경제 구조에서 개인적 차원의 라이프스타일은 소비, 그리고 폐기 과정 중의 일부에만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원추출과 생산 측면에서의 구조적인 변화인데, 의도하였든 의도하지 않았든, 라이프스타일의 변화를 촉구하는 지속가능성 캠페인이나 광고는 기후위기의 본질을 가리고 그 책임을 개인에게 전가한다는 점에서 비판받아 왔다.

광고에서 안내하는 GC S세대 웹사이트에 가보면 넷제로 라이프스타일을 위한 41가지의 아이디어들과 함께 비즈니스 S세대 카테고리가 있다. 개인이 아닌 기업에는 어떠한 제안을 하는지 살펴보니 플라스틱 사용량을 줄이기 위한 솔루션, 자연 생분해되는 대체 포장재, 효율성은 유지하면서 자원 사용량은 줄이는 혁신 기술, 환경 문제를 해결하는 코팅 수지 등이 안내되어 있었다. GC와 계열사에서 생산, 판매하는 다양한 친환경 소재와 제품 홍보였다. 다양한 제품이 있었는데 경량 플라스틱 병뚜껑, 수상 태양광 부교, 재활용성을 높인 단일소재 플라스틱, 생분해성 종이 및 플라스틱, 재생 플라스틱 펠릿으로 만든 수축 필름, 재생 섬유 등 15개 제품군에 대한 상세한 설명과 링크를 찾아볼 수 있었다. 그리고 GC의 S세대 파트너가 되고 싶다면 관심 있는 제품군을 선택하여 온라인 신청서를 보내달라는 안내까지.

결국 GC의 S세대 광고는 어린아이를 주인공으로 하여 지속가능한 라이프스타일을 추구해야 한다는 메시지를 던지면서 석유화학산업의 문제를 감추는 그린워싱만은 아니었다. 기후위기와 생태위기를 기회로 삼아 기술적, 사회-생태적 조정을 통해 화석연료 기반 산업의 토대는 그대로 유지하여 결과적으로는 기후위기 해결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녹색 자본주의의 모습까지 보여주고 있었다.

개인의 라이프스타일 변화와 친환경 혁신 기술을 통해 우리가 직면한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믿음은 허구다. 아무것도 안 하는 것보다 낫다는 이유로 구조적인 문제는 그대로 둔 채 녹색 자본주의적 해법을 받아들이며 라이프스타일을 바꾸는 것으로 안심해서는 안 된다. 화석연료 산업이 대대적인 광고를 통해 환상을 만들어내고 있는 것은 비단 태국만의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은 많지 않다. 지구 위험 한계선의 9개 지표 중 6개가 이미 그 한계를 넘어섰으며 지구 평균 기온 또한 재앙적 기후변화의 마지노선인 1.5도를 곧 넘어설 것이라는 경고가 계속해서 이어지고 있다. 태국 GC의 S세대 광고가 잘 보여주고 있는 녹색 자본주의적 해법의 환상은 결국 위기를 해결하는 데 치명적인 방해가 될 뿐이다. 망가져 버린 지구에서는 기업의 이윤추구도, 한 국가의 발전도, 개인적 수준의 성장과 번영도 의미가 없다.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이제는 허구와 환상을 만들어 내는 광고나 마케팅, 기술적 혁신이 아니라 현재의 위기를 야기한 자본주의와 성장주의를 깨뜨리는 파열이 필요할 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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