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괴물' 류현진이 12년 만의 한국 무대 공식 복귀전에서 쓴 맛을 봤다. 기대에 못미친 구위, 동료들의 지원 부족, 예전과 달라진 상대 타자들까지. 장및빛 시나리오를 꿈꾸던 한화와 류현진에게 모두 경각심을 일깨워줄만한 첫 경기였다.
 
3월 23일 서울 잠실야구장에서 열린 '2024 신한은행 SOL뱅크 KBO리그' LG 트윈스와 원정 개막전에 선발등판한 류현진은 3.2이닝 6피안타 3사사구 5실점(2자책)으로 고전하며 5이닝도 채우지 못하고 조기강판됐다. 투구수는 86개였다. 믿었던 류현진의 부진 속에 한화는 LG에 2-8로 완패했다. 류현진은 첫 경기에서 1패, 평균자책점 4.91을 기록했다.
 
몸에 쓴 약 될까 

류현진은 올시즌을 앞두고 한화와 8년 170억의 대형 계약을 맺고 국내로 복귀했다. 한화는 에이스 류현진의 가세로 올시즌 유력한 5강 후보로 거론되며 기대를 모았다. 류현진은 시범경기에서는 2경기(9이닝) 2승 평균자책점 3.00을 기록했고, 12년만에 개막전 선발투수로 낙점됐다.

하지만 KBO리그 복귀 신고식은 순탄하지 않았다. 류현진은 2회부터 급격히 흔들렸다. 1사 후 오지환을 볼넷으로 내보낸 것을 시작으로, 문보경의 우익수 플라이 뒤 박동원에 좌전 안타, 문성주에 유격수 내야 안타를 내주며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다. 결국 류현진은 신민재에 2타점 좌전 적시타를 허용하며 선취점을 내줬다.
 
한화가 2-2로 승부를 원점으로 돌린 4회말에는 수비 실책이 류현진의 발목을 잡았다. 2사 후 문성주를 볼넷으로 내보낸 뒤 신민재를 평범한 2루 땅볼 상황에서 한화 2루수 문현빈이 공을 공을 가랑이 사이로 빠뜨리는 알까기 실책을 범한 장면이 뼈아팠다. 과거 한화 1기 시절에도 류현진을 여러 차례 괴롭혔던 '행복 수비'의 악몽이 떠오르는 순간이었다.
 
수비 도움을 받지 못하면서 천하의 류현진도 멘탈이 흔들렸는지 안정감을 잃었다. 박해민에 1타점, 홍창기에 2타점 중전 적시타를 내준데 이어, 후속타자 김현수까지 3연속 좌전 안타를 맞자 한화 벤치는 결국 류현진을 조기 강판했다. 사실상 승부의 흐름이 LG 쪽으로 기우는 결정적인 순간이기도 했다. 진작에 끝냈어야 할 이닝을 실책 하나가 불러온 '스노우볼'이었다.
 
타선 지원도 부족했다. 4회 무사 만루의 찬스에서 최재훈의 밀어내기 사구로 동점을 만들어내기는 했으나 하주석, 정은원, 페라자가 줄줄이 범타와 삼진으로 물러나며 단 1점을 뽑는데 그친 장면이 뼈아팠다. 류현진이 마운드에서 내려간 이후 한화 타선은 남은 5이닝 동안 단 한점도 만회하지 못했다.
 
한화 타선은 이날 산발 7안타에 그쳤다. 페라자와 채은성이 멀티히트를 기록했으나 득점권에서 찬스르 살리지못했다. LG 새 외국인 투수 디트릭 엔스는 6이닝 7피안타 3사사구 4탈삼진 2실점으로 한화 타선을 틀어막으며 류현진과의 맞대결에서 승리투수가 됐다. 그 뒤를 이은 김진성과 박명근, 이우찬으로 이어지는 LG는 불펜이 각각 1이닝씩 한화 타선을 퍼펙트로 봉쇄했다.

동료들의 지원 부족만 탓하기에는 류현진의 구위도 기대에는 미치지 못했다. 이날 허용한 5실점 중 류현진의 자책점은 2점 뿐이기는 했지만, 수비 실책 이후를 제외하고 봐도 류현진의 투구 내용은 그리 인상적이지 못했다. 우려했던 직구 구속은 의외로 최고 150km까지 나온 반면, 류현진의 강점으로 꼽히던 정교한 제구력과 위기 관리 능력은 찾아볼수 없었다.
 
공의 위력이 받쳐주지 못하다보니 탈삼진은 단 1개도 잡지 못했다. 류현진이 KBO리그에서 탈삼진을 하나도 잡지 못한 경기는 프로 2년 차였던 2007년 9월 삼성전에 이어 17년 만이자 통산 2번째였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에서도 볼넷을 잘 내주지 않는 투수였다. 메이저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이자 토미존 수술을 받고 돌아온 지난 2023년에도 한 경기에서 3개 이상의 볼넷을 내준 것은 11경기중 딱 1번이었다. 하지만 이날 류현진은 불과 3.2이닝만에 볼넷을 3개나 허용했고 86구중 볼만 31개나 던졌다.
 
LG가 그만큼 류현진을 잘 공략한 것이라고도 볼수 있다. 류현진은 메이저리그 진출 이전인 한화 1기 시절만 해도 LG를 상대로 통산 22승 8패 평균자책점 2.36으로 천적의 면모를 과시한바 있다. 류현진의 데뷔 첫승(2006년 4월 12일), KBO리그 정규이닝 최다인 17개의 탈삼진(2010년 5월 11일) 기록 등을 모두 LG를 상대로 작성하며 '엘나땡(LG가 나오면 땡큐)'이라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런데 당시 LG는 가을야구 진출과 오랫동안 인연을 맺지 못하며 구단 역사상 최악의 암흑기를 보내던 시기였다. 하지만 현재의 LG는 지난 시즌 29년만의 우승의 한을 풀며 챔피언의 자리에 올랐고 올시즌도 강력한 우승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류현진의 각성 필요해
 
지금의 LG는 류현진이 한화 1기 시절 상대해본 선수들과는 완전히 다른 팀이 됐다. LG 주장 오지환은 미디어데이에서 "류현진을 상대한다고 해서 긴장되지는 않았다. 승리는 우리가 차지할 것"이라고 자신감을 드러냈고 결과적으로 호언장담한 대로 경기에서 증명했다.
 
반면 류현진은 패배후 "구속이나 컨디션은 괜찮았다. 그동안 준비를 잘 해왔는데 제구가 좋지 않았고, 경기가 잘 풀리지 않았다. 다음 경기에서는 더 좋은 모습을 보여드릴 것"이라고 이날 경기를 돌아보며 아쉬운 기색을 감추지못했다.

한편으로 류현진과 한화에게는 쓰디쓴 첫 패배가 오히려 몸에 좋은 약이 될 수도 있다. 전성기에는 KBO리그를 평정했고 메이저리그에도 최정상급 투수로 군림했던 류현진인만큼, 국내로 다시 돌아와서도 압도적인 활약을 기대했던 이들이 많았다.
 
하지만 류현진도 어디까지나 사람이고, KBO리그의 수준도 그만큼 발전했다. 메이저리그 경력이나 과거의 이름값이 현재 KBO리그의 성적까지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사실은, 그동안 한국야구를 거쳐간 메이저리그 출신 외국인 선수들의 사례에서도 확인할수 있다.

긍정적인 부분은 부상 후유증에도 불구하고 구속이 많이 올라왔다는 것이다. 류현진은 지난 시즌 메이저리그에서도 150km를 넘긴 적이 한번도 없었다. 어차피 류현진의 장점은 제구력에 있고, 복귀후 첫 경기였음을 감안하면 점차 나아질 가능성이 높다. 변수로 꼽히는 한화의 수비 역시 문현빈의 실책이 후폭풍이 크기는 했지만, 단 한번뿐이고 더 이상의 실책은 나오지 않았다.
 
류현진의 다음 등판은 오는 29-31일에 홈구장인 대전 한화생명이글스파크에서 열릴 kt 위즈와 3연전중 한 경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 KT 역시 우승후보로 꼽히는 강팀이다. 류현진이 첫 경기의 부진을 자극삼아 홈에서는 달라진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지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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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현진 한화이글스 LG트윈스 개막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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